[박해성의 여의대교] 佛 앙마르슈 승리 비결은?
- 작성일2024/01/2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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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추진' 이낙연·이준석과 마크롱의 차이는…
불안정한 의석 구도와 흔들리는 지지층으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다가오는 4월 국회의원 선거를 맞아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입니다.
혁신안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급작스레 사퇴한 이후 여당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놓고 분주한 상황입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신당 창당이 부담으로 작용하던 국민의힘 입장에서,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에 이어 당 대표마저 불명예스럽게 물러나면서 위기의식이 절정에 도달한 듯합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비대위를 이끌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낙연 전 대표를 둘러싼 논란으로 술렁이고 있습니다. 친명계와 비명계의 갈등으로 분열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 전 대표가 신당 결성에 나설 조짐을 보이자 전체가 흔들리는 양상입니다. 지금까지 무려 117명의 소속 의원이 창당 반대 성명에 서명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전 대표를 향한 저항의 목소리가 거세집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층의 84%가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에 반대한다는 결과까지 나왔습니다(12.17~18, 엠브레인퍼블릭). 당 안팎의 분위기가 우호적이지 않자 이 전 대표는 정세를 살피며 결정의 시기를 늦출 것으로 예상됩니다.
거대 양당의 향방과는 별개로 이준석 전 대표를 비롯해 류호정 의원(정의당), 양향자 의원(한국의희망), 금태섭 전 의원(새로운선택) 등 제3세력 형성을 위한 움직임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견고한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허물고 실질적인 대안으로 성장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신당이 뿌리를 내리려면 어떤 준비와 여건이 갖춰져야 할까요?
'새로운 정치'. 직접적인 이유가 무엇이든, 신당을 준비하는 세력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구호입니다. 기성 정치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을 모아 새로운 질서와 기준을 만들어내려는 것이죠. 우리나라 선거에서 양대 정당에 등을 돌린 유권자들이 신생 정당에 지지를 보낸 사례는 2016년 4.13 총선 당시 국민의당 정도가 유일했습니다. 다만, 국민의당은 한국의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지 못한 채 사라져 결과적으로 실패한 시도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국민의당이 녹색 바람을 일으켰던 바로 그해 4월, 프랑스에서도 중대한 정치적 변화가 시작됩니다. 에마뉘엘 마크롱의 신당인 앙마르슈(En Marche, '전진하라')의 출범이 그것입니다. 당시 프랑스 여당이었던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당은 내부 균열과 정책 실패로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실망감을 느낀 유권자들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프랑스판 강남좌파로 불린 마크롱이 등장합니다. 그는 중도 실용주의를 표방했는데요, 낡은 정당 노선의 극복을 바라는 대중의 열망을 정확하게 읽어낸 영민한 전략이었습니다. '올랑드 키즈'로 불렸던 마크롱은 경제장관직을 사임하고 신당을 창당하며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사회당과 결별합니다. 참신한 이미지의 마크롱이 이끈 앙마르슈는 순식간에 대중의 지지를 얻으며 프랑스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2017년 5월, 39세의 마크롱이 대선에서 승리합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기성 정당이 모두 참패하고 신생 정당의 후보가 당선된 이 사건은 프랑스 정치 역사에서도 최대 이변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대선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도 전체 577석 중 350석을 획득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며 승승장구했습니다. 오랫동안 공화당-사회당 양당이 주도하던 프랑스의 앙시앙 레짐은 막을 내리고, 마크롱 패러다임이 새로운 프랑스 정치를 규정하게 된 것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022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고, 2027년까지 임기를 수행하게 됩니다.
선거를 준비하며 새로운 정치의 방향을 모색하는 많은 인사들이 마크롱의 성공 사례를 거론하곤 합니다. 2016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양극화되고 민생에 무력한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반감이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판단이 전제돼 있습니다. 유권자의 30~40%가량은 어떤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중도·무당층으로 분류된다는 점도 신당 창당 세력의 기대 요인입니다.
정치적 환경만 본다면 타당한 분석입니다. 그렇다면 보수성향이지만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비판적인 유권자들은 국민의힘 대신 이준석 신당을 선택할까요? 이재명 대표의 정당 운영 방식에 불만이 있는 민주당 지지층은 이낙연 신당이 출범하면 새 정당으로 옮겨갈까요? 현재 신당을 추진하는 세력들이 힘을 모아 소위 제3지대에 대형 정치세력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면, 양당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나와 그 정당에 힘을 보태줄까요? 여러분은 이런 질문들에 망설임 없이 '그럴 것 같다'라고 답할 수 있나요?
기존 정치권력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마크롱 신당 성공의 요인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앙마르슈가 신뢰할 만한, 국민이 선택할 만한 대안으로 부상한 데는 몇 가지 조건이 더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선 마크롱은 자신을 전통적인 정치 체제에 물들지 않은 아웃사이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정당 지지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설득력 있는 비전을 제시하며, 자신이 복잡한 국정을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는 역량 있는 지도자임을 부각했습니다. 마크롱의 매력적인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과 변화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앙마르슈 성공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우선 마크롱은 자신을 전통적인 정치 체제에 물들지 않은 독립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정당 지지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설득력 있는 비전을 제시하며, 자신이 복잡한 국정을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는 역량 있는 지도자임을 부각했습니다. 마크롱의 매력적인 리더십과 변화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앙마르슈 성공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굳어진 정당 노선에 염증을 느낀 폭넓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던 중도주의적 접근 방식도 주목할 만합니다. 마크롱은 이념적 대립을 넘어서 다양한 계층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현실적이고 포용적인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친기업·자유주의적 개혁 성향을 보이면서도 종교나 이민, 인권, 평등 등 사회적 의제에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유지했는데, 이를 통해 마크롱 신당은 사회당을 지지했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을 비롯해 다른 정당의 지지층까지 조금씩 흡수해 나갔습니다.
마크롱 현상을 일으킨 앙마르슈의 창당은 일종의 정치 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시민과의 진정성 있는 양방향 소통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그랑드 마르슈(Grande Marche, 가가호호 방문해 유권자를 만난 앙마르슈의 대국민 인터뷰 캠페인)'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2030세대의 열성 지지자들로 조직을 구성하고 현장에 방문해 유권자들과 심도 있는 대화 끝에 공약과 비전을 도출해냈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유권자와 직접 소통하기도 했죠.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신당의 추진 과정은 어떠합니까? 저는 아무리 살펴봐도 기존 정치에 대한 반대 정체성 외에는 뚜렷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윤석열 정부로는 안 된다, 이재명 대표 체제로는 안 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으로는 안 된다, 이런 주장들이죠. '왜 내가 적임자인가'를 설득하기보다 상대를 부정함으로써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방식입니다. 주도 세력의 참신함이나 리더의 카리스마, 명확한 비전, 시민들과의 소통 능력과 같은 독자적인 추진력을 만들어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만약 국민의힘이 당 혁신에 성공한다면, 또는 무풍지대의 민주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거친 벌판으로 나설 결심을 한다면 신당의 입지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미래의 실현 여부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에게 달려 있다는 점도 신당이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죠. 연동형이냐 병립형이냐 하는 비례대표 선거제도가 신당 성공의 핵심 변수가 되는 현실 역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세력들의 불안정한 기반을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추석 이후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마크롱의 그랑드 마르슈를 벤치마킹한 '한국판 앙마르슈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장 여론조사를 통해 총선 공약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인데, 여권이 처한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이 방법만 차용한다고 해서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오랜 세월 좌우로 나뉜 프랑스의 정치가 중도실용을 내세운 마크롱 돌풍에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맞이하게 된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시사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신당 성공의 조건은 대중의 불만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유권자의 열망에 공감하는 변혁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데 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신당의 여정이 단순히 선거에서 몇 석을 얻기 위한 게 아니라 신뢰, 책임, 발전이라는 새로운 정치의 시대를 여는 힘을 키워나가는 길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