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의 여의대교] 여론조사 = 해석의 과학
- 작성일2024/02/0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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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사과 말씀 드린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2년 전 여름 난데없는 '문해력 논란'이 우리 사회를 맹렬히 달궜던 적이 있습니다. 한 웹툰 작가의 'SNS' 메시지가 발단이었는데요, 일부 네티즌들이 '심심(甚深)'이라는 한자어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라는 의미의 한글 단어로 오해하면서 빚어진 일이었습니다.
'문해(文解)'는 '글을 읽고 이해함'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문해력은 단순히 문자를 파악하는 능력이라기보다 '이해력'까지를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심심'이라는 글자를 읽을 수는 있어도 '심심한 사과'의 '심심'이 어떤 뜻인지 모른다면 '의미적 읽기'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린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2년 전 여름 난데없는 '문해력 논란'이 우리 사회를 맹렬히 달궜던 적이 있습니다. 한 웹툰 작가의 SNS 메시지가 발단이었는데요, 일부 네티즌들이 '심심(甚深)'이라는 한자어를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라는 의미의 한글 단어로 오해하면서 빚어진 일이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면서 현재 여론조사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어떤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제1야당인 민주당이 앞서나갈 것 같고, 또 다른 결과를 확인하면 여야 어느 쪽의 독보적인 승리를 예측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같은 기간에 진행된 결과가 왜 이토록 다른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이러한 현상을 파악하려면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숫자의 맥락을 해석하는 데이터 문해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여론조사가 '해석의 과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공개된 1월 4주차 2개의 여론조사 결과를 정당 지지도를 중심으로 들여다보겠습니다. 조사기관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와 리얼미터입니다. 자체 조사결과를 주 1회씩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있어 비교하기 적절하다는 판단에서 이들을 선정했습니다.
같은 시기의 조사 결과라 믿기 힘들 정도로 차이가 크다고 느끼시나요? 이런 결과를 접하면서 즉각 '여론조사는 믿을 게 못 돼'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한국갤럽과 리얼미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조사기관입니다. 발표한 조사 결과 또한 중앙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누구든지 세부 내용까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사가 잘못된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이러한 결과가 도출된 걸까요?
두 기관의 조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차이점은 전화 면접(한국갤럽)이냐, ARS(리얼미터)냐, 하는 점입니다. 이를 데이터 표집 방식이라고 하는데요, 조사방법이 결과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모드 효과(mode effect)'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모드 효과는 조사 참여자의 성향을 구분해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상이한 여론조사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방법론이라는 변수에 대한 기본적인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겠죠.
리얼미터와 같이 ARS 방식을 활용하는 여론조사에는 정치 고관여층의 응답이 더 많이 포함됩니다. 무당층의 비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국갤럽은 22%, 리얼미터는 6%입니다. 내가 정치에 별다른 관심도 없고 선호하는 정당도 없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정치·선거 여론조사입니다. 만약 기계음으로 나오는 ARS 조사라면 바로 끊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전화를 받았는데 면접원이 잠깐이면 된다며, 잠시만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하면 마음이 움직여 조사에 응할 수도 있겠죠. 평소 지지하는 정당이 있냐는 면접원의 질문에 '없는데요'라고 답했다면 나는 22%의 무당층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갤럽은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해 무작위로 표본을 추출하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응답 방식은 전화 조사원 인터뷰인데, 전문 면접원이 전화 수신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며 조사를 실시합니다. 흔히 '전화 면접조사'라고 합니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 번호를 무작위로 생성해 추출하는 RDD(random digit dialing) 방식이며, 자동응답 전화조사로 수행합니다. 여론조사를 받으면 녹음된 성우음성이 들리고 보기를 선택해 전화기 버튼을 누르며 응답하는 방식입니다. 편의상 'ARS 조사'라고 부릅니다.
지난 1월 26일 갤럽이 공개한 조사 결과 중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6%, 더불어민주당 35%, 정의당 2%, 기타 정당/단체 5%, 지지하는 정당 없는 무당(無黨)층 22%로 나타났습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격차는 1%포인트인데 통계적으로 오차범위(최대 6%포인트) 내의 차이이므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29일 발표한 리얼미터의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45%, 국민의힘 37%, 정의당 2%, 진보당 2%, 무당층 6%였습니다. 양당 간 차이는 8%포인트로, 오차범위 밖의 격차라 민주당이 우세하다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같은 시기의 조사 결과라 믿기 힘들 정도로 차이가 크다고 느끼시나요? 이런 결과를 접하면서 즉각 '여론조사는 믿을 게 못 돼'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한국갤럽과 리얼미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조사기관입니다. 발표한 조사 결과 또한 중앙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누구든지 세부 내용까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사가 잘못된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이러한 결과가 도출된 걸까요?
두 기관의 조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전화 면접(한국갤럽)이냐, ARS(리얼미터)냐, 하는 점입니다. 이를 데이터 표집 방식이라고 하는데요, 조사방법이 결과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모드 효과(mode effect)'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모드 효과는 조사 참여자의 성향을 구분해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따라서 상이한 여론조사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방법론이라는 변수에 대한 기본적인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겠죠.
리얼미터와 같이 ARS 방식을 활용하는 여론조사에는 정치 고관여층의 응답이 더 많이 포함됩니다. 무당층의 비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국갤럽은 22%, 리얼미터는 6%입니다. 내가 정치에 별다른 관심도 없고 선호하는 정당도 없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봅시다.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정치·선거 여론조사입니다. 만약 녹음된 음성이 나오는 ARS 조사라면 바로 끊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전화를 받았는데 면접원이 잠깐이면 된다며, 잠시만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하면 마음이 움직여 조사에 응할 수도 있겠죠. 평소 지지하는 정당이 있냐는 면접원의 질문에 '없는데요'라고 답했다면 나는 22%의 무당층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갤럽과 동일하게 전화 면접으로 조사를 수행하는 전국지표조사(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주)코리아리서치인터네셔널/(주)한국리서치 공동)에서도 1월 4주차 조사 결과 무당층이 26%로 집계되었습니다. 무당층의 크기로 분석해 볼 때 전화 면접조사는 ARS 조사에 비해 정치 관심도가 평균적인 수준이거나 관여도가 낮은 응답자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는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당 지지도 차이도 살펴보겠습니다.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두 기관의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도는 36%, 37%로 거의 차이가 없는데 반해 유독 민주당 지지도만 35%, 45%로 10%포인트나 차이가 납니다. 이러한 결과로 볼 때 현재는 정치 고관여층 중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의 유권자가 더 많은 지형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각 정치 세력에게는 어떤 선거든 중도·무당층으로 지지기반을 확장하는 전략이 승패를 가르지만, 현재로서는 핵심 지지층에서 다소 뒤처지는 국민의힘이 더욱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판단됩니다.
민주당은 공직선거 후보자를 평가하고 심사하고 선출하는 과정에서 ARS 방식의 여론조사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당원과 일반 유권자의 의견을 동등하게 반영한다는 취지입니다만, 앞서 살펴본 모드 효과에 따르면 매우 적극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선택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현재의 방식이 지닌 의미를 이해한다면, 더 폭넓게 유권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공직 후보자를 추천하기 위해 보완할 점은 없는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미국의 철학자인 제이슨 브레넌(Jason Brennan)은 <민주주의에 반대한다(Against Democracy)>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저서에서 유권자를 호빗(반지의 제왕), 훌리건(스포츠의 열성 팬), 벌컨(스타트렉)의 세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호빗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로, 정치에 관심도 없고 지식도 많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훌리건은 꾸준히 투표에 참여하며 정치에 관해 나름의 확고한 신념을 지녔지만, 정치지식을 편향된 방식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대다수 정치인도 훌리건에 속한다고 합니다. 벌컨은 정치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증거를 토대로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려는 이성적인 유권자를 의미합니다.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 분열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혐오뿐 아니라 주요 정치 세력 간, 그 지지층 간 대립과 반목이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죠. 각 정당 지도부가 내놓는 메시지, 편향적이고 자극적인 유튜브 채널 등이 지속적으로 독설에 몰두하는 정치 훌리건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우려됩니다. 부디 많은 시민이 편견 없이 정치지식을 습득하기를, 사실에 기초해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가 더 나은 공직자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오늘의 여론조사 독해법은, 여러분이 모두 균형 잡힌 뾰족한 귀의 벌컨족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전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