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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박해성의 여의대교] '이미지 정치'의 이면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 작성일2024/02/15 13:28
    • 조회 9

    윤석열·이재명·한동훈…. 우리는 그들을 모른다?

    '이미지 정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제법 잘 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 예를 들어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또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우리는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우리는 그가 가진 철학은 무엇인지, 그의 정치적 신념은 어떤 것인지, 그가 추구하는 정책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보고 그 정치인에 대해 호감을 느끼거나 싫어하는 걸까요? 아니면 대중적으로 각인된 그의 '이미지'를 보고 지지하거나 반대하게 되는 걸까요?

    정치 소통과 대중 홍보에 기반을 두는 이미지 정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특정한 인식을 형성하고, 감정에 영향을 미치며, 궁극적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미지 정치는 감정적 호소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정치에 설득된 우리는 투표와 같은 정치적 선택을 할 때 정책의 실체나 콘텐츠의 본질보다는 정치인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중점을 두게 됩니다.

    이 분야의 주요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캐나다의 사회학자이자 <자아 연출의 사회학(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의 저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연극적 시각으로 사회를 분석했는데, 개인들이 타인에게 전달되는 인상을 관리하기 위해 여러 전략을 활용해 일종의 사회적 퍼포먼스에 기여한다는 주장이 핵심입니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정치인이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의도적인 페르소나(실제와는 별개인 일종의 사회적 성격)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분야의 대표적 연구자 중 한 명으로 캐나다의 사회학자이자 <자아 연출의 사회학(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의 저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이 있습니다. 그는 무대 위 배우들처럼 사회를 바라보며 분석했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를 조절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일종의 사회적 퍼포먼스를 보인다는 것이 핵심 주장입니다. 정치 영역으로 보자면, 정치인이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의도적인 페르소나(실제와는 별개인 일종의 사회적 성격)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08년 대선 캠페인에서 희망, 변화, 통합을 강조했는데요, 잘 알려진 '희망' 포스터가 그의 메시지를 상징했습니다. 미국의 예술가인 셰퍼드 페어리가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빨간색, 베이지색, 그리고 파란색의 단색으로 오바마의 얼굴을 표현하고, 하단에는 'HOPE'란 문구를 새겼습니다. 이 작품은 포스터와 스티커의 형태로 세상에 나왔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인의 가슴속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일관된 이미지를 구축해 강력한 리더십과 탄탄한 지지층을 확보한 대표적인 예시라 하겠습니다.

     

    정치·선거 컨설턴트로서와 신념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이미지라는 포장, 환상만 좇게 되는 큰 흐름이 마음 한켠을 불편하게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설 연휴 중 우연히 접한 한 편의 영화가 이 고민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프레지던트 메이커(Our Brand Is Crisis)>는 2015년 제작된 미국 영화입니다. 데이빗 고든 그린이 연출을 맡았고 산드라 블록, 빌리 밥 손튼 등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볼리비아 대선 현장에 뛰어든 미국 정치 전략가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대통령 후보자는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 허상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전략가들은 양심의 가책 없이 승리만을 위해 움직이는 전문가들로 묘사됩니다. 과장된 면이 있지만, '단순한 영화적 상상'이라고만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2002년 볼리비아 대선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이 영화는, 바람직한 정치를 위해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자는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요? 그를 지지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소신 있는 공직자, '공정'과 '자유민주주의' 기치를 내걸고 한순간에 정치 전면에 나선 신선한 도전자,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부각하며 '어퍼컷'을 날리는 속 시원한 보수의 대변자. 정치 신인이었던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소 극적인 내러티브와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끼던 시민들의 호감을 얻은 아웃사이더 이미지가 자리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48.56%의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최근 대통령의 직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29%에 불과합니다(한국갤럽, 2024.2.2.). 당선 이후 '윤핵관'으로 불린 핵심 참모를 통한 당무 개입, 김건희 여사 의혹 비호, 과도한 이념정치 몰입, 전 정권 탓으로 일관한 책임 회피, 인사·외교 등에서 보여준 무능, 대언론 관계에서 드러난 불통, 야당과 시민사회를 적으로 규정하고 거부권(재의요구권)을 남발하는 독선적 태도 등 일련의 과정이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달라지게 했다고 봅니다.

    <프레지던트 메이커(Our Brand Is Crisis)>는 2015년 미국 영화입니다. 데이빗 고든 그린이 메가폰을 잡았고 산드라 블록, 빌리 밥 손튼 등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볼리비아 대선 현장에 투입된 미국 정치 컨설턴트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대통령 후보자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허상을 만들어내는 인물로, 컨설턴트들은 양심의 가책 없이 승리만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전문가들로 그려집니다.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그저 영화적 상상'이라고만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2002년 볼리비아 대선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토대로 제작되었다는 이 영화는, 좋은 정치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자는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요? 그를 지지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한번 생각해봅시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소신 있는 공직자, '공정'과 '자유민주주의' 기치를 내걸고 한순간에 정치 전면에 나선 신선한 도전자,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부각하며 '어퍼컷'을 날리는 속 시원한 보수의 대변자. 정치 신인이었던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소 극적인 내러티브와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끼던 시민들의 호감을 얻은 아웃사이더 이미지가 자리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48.56%의 득표율로 당선됐지만, 최근 대통령의 직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29%에 불과합니다(한국갤럽, 2024.2.2.). 당선 이후 '윤핵관'으로 불린 핵심 참모를 통한 당무 개입, 김건희 여사 의혹 비호, 과도한 이념정치 몰입, 전 정권 탓으로 일관한 책임 회피, 인사·외교 등에서 보여준 무능, 대언론 관계에서 드러난 불통, 야당과 시민사회를 적으로 규정하고 거부권(재의요구권)을 남발하는 독선적 태도 등 일련의 과정이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달라지게 했다고 봅니다.

     

    이미지 정치의 핵심적인 문제는 내용보다 스타일을 우선하고 본질보다는 외형에 집중한다는 점입니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한 포장으로서 이미지와 상징을 구현할 수는 있겠지만, 실체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대중의 실망과 불신과 회의는 필연적인 결과가 됩니다. 대통령 선거 기간 내내 우리는 결과적으로 하나의 정치 쇼를 지켜본 게 아닐까요? 고프만의 사회학적 관점으로 보면 그리 틀린 생각만은 아닌 듯합니다.

    오는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에 출마한 여야의 후보자들이 어떤 정치를 펼치겠다는 건지 도무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운동권 정치를 끝내기 위해 국민의힘을 선택해달라는 것도,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 민주당을 지지해달라는 것도, 유권자로서 받아들이기에는 매우 불쾌한 호소입니다. '동료 시민'과 같은 뭔가 새로운 스타일로 자신의 정치를 표현하고자 하는 한동훈 위원장이나, '검찰 정권의 희생양'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이재명 대표만 믿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나의 삶과 지역사회의 미래를 맡겨달라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멜론을 처음 맛본 어떤 꼬마가 "엄마, 이 과일에서 메로나 맛이 나"라고 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늉, 흉내, 모의(模擬) 등을 뜻하는 '시뮬라르크(simulacre)'라는 개념을 설명할 때 자주 활용하는 비유죠. 실제로는 없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혹은 오히려 더 생생하게 인식되는 것들을 가리킵니다. 처음에는 멜론의 맛을 본떠 메로나라는 아이스크림을 만들었겠지만, 이제 멜론의 맛은 메로나를 통해 더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원본과 모조품의 가치 전도가 일어납니다.

    이미지 정치가 위장된 정치, 가짜 정치라고까지 단정 짓지는 않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거의 모든 일상에서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다만, 정치인의 이미지 속에 감춰진 실체를 똑바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정치가 진실과 책임을 바탕으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한 우리 유권자들의 책임 있는 역할은, 정확한 정보와 이성에 기초한 선택일 것입니다. 오는 4월 총선에서는 각자의 지역에서 멜론과 메로나를 신중하게 구분해 한 표를 행사해보면 어떨까요?

    덧붙이자면, 희망 포스터를 만든 페어리는 7년이 지난 뒤 '희망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는 말로 오바마 정부를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투표 같은 간단한 일조차 하지 않으면서 오바마 대통령이나 다른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좌절감을 느낀다"고 미국인들의 행동을 촉구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