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의 여의대교] 영혼을 팔아서라도 가고 싶은 '신의 직장' 국회?
- 작성일2024/02/2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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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4년 총선 이전인, 2024년 2월 29일날 작성됐습니다)./
이 사람의 직업을 한 번 맞춰보시겠어요?
"저의 급여는 1억 5700만 원입니다. 매달 수령하는 금액은 1300만 원 수준입니다. 제가 설령 심각한 사적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급여는 계속해서 지급됩니다. 제 급여와는 별개로 매달 직원 인건비(연 4억9000만 원), 식대(연 770만 원), 차량 관리비(월 35만 원) 및 기름값(월 110만 원) 등이 지원됩니다. 여기에 활동지원비, 대민 홍보비, 통신비, 야간 근무 식비, 공무 택시비 등을 포함하여 연간 1억2000만 원 규모의 운영비도 별도로 제공됩니다.
45평 규모의 독립된 집무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9명의 인력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제 업무를 보조하면서 비서와 운전기사 역할도 수행합니다. 제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내에는 이발소, 헬스장, 목욕시설 등의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는데 횟수 제한 없이 무상으로 이용합니다. 내과, 치과, 한의원 등 건물 내 의료시설에서는 제 가족들까지도 무료로 진료받을 수 있습니다.
항공이나 KTX 이용 시에는 언제나 비즈니스석이나 특실을 이용합니다. 비용은 지불하지 않습니다. 매년 최소 두 차례 이상 해외 시찰 기회가 주어지며, 상당히 호화롭습니다. 공항에서는 귀빈실과 귀빈 주차장을 제공받고 출입국 절차도 간소화됩니다. 현지에서는 교통수단, 통역사, 숙박시설 등이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 국내에는 제 가족들까지도 실비로 활용할 수 있는 리조트급 연수원이 강원도에 있습니다.
저는 횡령이나 사기, 뇌물수수 등의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막말로 다른 사람의 명예를 더럽혔지만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저의 직업은 무엇일까요?"
네, 국민의 뜻을 대변하고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입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후보자 선정을 위한 여야 정당들의 공천 과정이 한창입니다. 기존 자리를 지키려는 측과 새로운 도전을 하는 측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이다 보니 어느 정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공천 학살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극심한 대립 속에서 탈당, 단식, 농성 등이 이어지는 광경을 보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도대체 어떤 직위이기에 이토록 사람들이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것일까요?
대한민국 헌법 제44조 ①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 ② 국회의원이 회기 전에 체포 또는 구금된 때에는 현행범인이 아닌 한 국회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된다. 제45조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국회의원에게 부여되는 두 가지의 핵심적인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불체포 특권(제44조)과 면책 특권(제45조)입니다. 이는 국회의원이 외부의 부당한 간섭 없이 소신 있는 의정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작년에 두 차례 진행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계기로 국회의원의 특권 존속 여부에 관한 사회적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는 제도의 도입 취지와 오남용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장기적 논의 사항이라 생각됩니다.
핵심은 세부사항에 숨어있는 문제점들입니다. 국회의원이 누리는 각종 혜택이 180여 가지에 달한다고 합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에게 투입되는 막대한 세금입니다. 2022년 우리나라 1인당 평균 소득(1인당 국민총소득)은 4250만 원 수준인데, 국회의원의 세비는 이의 약 3.7배에 달합니다. 게다가 이 중 30% 가량을 차지하는 입법활동비와 특수활동비 등은 비과세 항목으로 분류되어 동일한 소득을 가진 일반 국민보다 훨씬 적은 세금을 납부합니다. 이는 일종의 '비과세 특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 급여에 9명의 보좌진 인건비와 각종 수당을 합산하면 한 의원실에 지원되는 세금이 연간 약 7억 원에 이르는 실정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비용이 온전히 의정활동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지역구 관리와 재선 준비 등 기타 용도로 상당 부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면 정치개혁의 단골 메뉴로 의원정수 감축이 거론되는 것이 이해됩니다. 선거 시기마다 국회의원 세비 삭감 논의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두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실현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국회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보지만, 이처럼 과도한 재정적 지원이 과연 타당한지는 진지하게 재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의원 세비 지급의 근거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입니다. 제1조에서는 이 법의 목적을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회의원의 직무 활동과 품위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실비를 보전하기 위한 수당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의원 한 명당 수억 원의 세금이 투입되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최소한의 실비'라는 문구가 매우 동떨어져 보입니다. 아울러 국회의원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직책임을 법조문에서 다시금 확인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세비 관련 사항이 이처럼 법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보니 입법을 담당하는 국회의원들이 스스로의 급여를 결정하는 '셀프인상'이 반복됩니다. 금년도 연봉은 전년 대비 1.7% 상승했는데, 민생 관련 법안이나 선거제도 등 주요 현안들은 제쳐두고 자신들의 급여 인상에는 여야가 신속히 합의했습니다. 1인당 GDP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보수는 전 세계 최상위권 수준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더해 스스로 인상까지 할 수 있는 구조라니 당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매 선거마다 제기되는 정치개혁이 번번이 헛구호로 끝나는 이유는 개혁의 주체가 당사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 때문입니다. 그들의 권한을 정치적 책무성, 투명성, 민주적 가치에 기초하여 합리적으로 조정하기를 기대하기에는 현재 정치인들의 역량이 크게 부족해 보입니다. 국민의 대표라는 지위가 주는 강력한 권한에 불필요해 보이는 다양한 특권과 혜택까지 더해지니 국회는 말 그대로 '꿈의 직장'이 되었고, 의원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차지하고 싶은 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저의 연봉은 1억 원 정도입니다. 6만 달러인 1인당 GDP를 기준으로 중상위권 수준입니다. 택시비, 차량 유지비, 야근 식대 등 별도로 지원되는 경비는 없습니다. 출퇴근에는 주로 자전거나 버스를 이용합니다. 업무상 비행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혼자 줄을 서서 시민들과 함께 일반석에 탑승합니다. 제 사무실은 3~4평 정도의 규모이고, 저를 개인적으로 보좌하는 직원은 따로 없습니다. 전화를 받거나 손님에게 차를 내어주는 일도 스스로 합니다. 보통 오전 7~8시에 출근해서 오후 9~10시에 퇴근합니다. 업무 일정이 빡빡한데다 일이 많고 힘들어 다음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동료들이 제법 됩니다. 저는 스웨덴의 국회의원입니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와의 대화에서 알게 된 내용입니다. 정치 문화와 제도, 관행 등 나라별 특성이 상이할 수 있어 '이것이 정답'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을 것입니다. 다만 180개국 중 2023년 스웨덴의 민주주의 지수가 세계 4위, 부패인식 지수가 세계 6위라는 성과로 입증되는, 한참 앞서있는 그들의 정치 시스템이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변화가 가능할까요?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자는 논의 이전에 그들의 과시성 특권을 없애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제는 국회가 '자체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 순진하게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권을 내려놓고 국민의 삶을 살피는 일에, 국민을 섬기는 일에 전념하는 정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주체는 바로 우리 유권자들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올 4월에는 선거가 있고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있습니다. 각 지역에서 특권 축소·폐지 공약을 요구하고, 당선 후 이행 여부를 점검하며, 또한 그 결과에 따라 차기 선거에서 심판하는 것까지. 이번 선거가 그렇게 바람직한 정치로 나아가는 작은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